같은 레시피인데,
왜 맛은 달라질까
커피 15g. 물 250g. 추출시간 3분. 숫자는 맞췄다. 그런데 맛은 다르다. 물을 조금 높이서 부었을 수도 있고, 마지막에 드리퍼를 한 번 더 돌렸을 수도 있다. 레시피에 적힌 것은 같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은 같지 않았던 셈이다.
그럼 레시피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까. 물의 양과 시간만으로 부족하다면, 어디까지 알아야 한 잔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필터 커피의 역사를 따라가 보니 이 질문이 조금씩 바뀌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찌꺼기를 걸러내려 했다. 그러다 농도를 재고, 물을 나누어 붓고, 이제는 커피 가루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들여다본다. 한 잔을 더 잘 이해하려다 보니 살펴야 할 것이 늘어난 것이다.
1908년 종이 필터에서 2026년 브루잉까지,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 따라가 본다. 여과부터 단계별 제어까지 나눈 여섯 단계는 이 글의 설명을 위한 구분이다. 실제로는 서로 겹쳐 발전했고, 오래된 방식도 여전히 쓰인다.

처음에는
찌꺼기를 거르고 싶었다
천 필터, 1908년 Melitta, 1941년 Chemex
커피를 우린 뒤에는 가루가 남는다. 마시려는 것은 커피인데 입에는 가루도 함께 들어온다. 지금은 필터 한 장을 꺼내면 되지만, 그 한 장이 없던 때에는 꽤 번거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1908년 멜리타 벤츠는 바닥에 구멍을 낸 황동 용기에 아들의 공책에서 가져온 흡묵지를 넣었다. 종이로 커피를 거른 것이다. 사용한 뒤 버릴 수 있으니 가루를 분리하고 뒤처리를 하기도 수월했다. 오늘날 종이 드립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장면이다.
천을 사용하는 넬드립은 또 다른 질감을 남겼다. 여과하는 재질이 다르면 음료에 남는 미세 입자와 오일도 달라진다. 천은 세척과 보관 상태까지 추출에 영향을 준다. 원두와 물을 똑같이 넣었다고 해서 같은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1941년 피터 슐룸봄이 만든 Chemex는 유리 추출기와 전용 종이 필터를 한데 묶었다. 필터는 가루를 거르는 동시에 물이 빠지는 속도에도 관여한다. 그러고 보면 종이는 추출이 끝난 뒤 찌꺼기만 잡아 주는 물건이 아니다. 추출하는 동안에도 일을 하고 있다.
가루는 걸러냈다. 그런데 어떤 잔은 진하고, 어떤 잔은 묽다. 깨끗하게 거르는 것만으로 맛까지 같아지지는 않았다. 이제 한 잔의 상태를 비교할 말과 숫자가 필요해진다.

진하다는 것과
많이 추출됐다는 것
TDS와 추출수율이 만든 공통 언어
커피가 약하다. 그럼 원두를 더 넣으면 될까. 아니면 더 오래 추출해야 할까. 쉽게 같은 처방처럼 느껴지지만, 두 조작이 바꾸는 것은 다르다. 이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 어니스트 록하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1957년에 개발된 Coffee Brewing Control Chart다.
TDS는 완성된 음료의 농도다. 음료 전체 질량에서 녹아 있는 고형물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추출수율(EY)은 넣은 원두에 비해 음료로 옮겨 온 용해성 물질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낸다. 한쪽은 잔을 기준으로 보고, 다른 한쪽은 처음 넣은 원두를 기준으로 본다.
| 항목 | 무엇을 뜻하나 |
|---|---|
| TDS (%) | 완성 음료 안에 녹아 있는 고형물의 질량 비율 |
| 추출수율 EY (%) | 완성 음료로 회수된 용해성 물질 ÷ 마른 원두 투입량 × 100 |
| 간이 계산식 | EY (%) = 완성 음료(g) × TDS(%) ÷ 원두(g) |
커피 15g으로 음료 220g을 얻었고 TDS가 1.35%라면, 잔에 담긴 용해성 물질은 약 2.97g이다. 음료를 기준으로 계산한 추출수율은 19.8%가 된다. 이때 220g은 주전자에서 부은 물의 양이 아니다. 서버에 실제로 모인 커피의 무게다.
이렇게 나누어 보면 묽어도 충분히 추출된 커피가 있고, 진해도 적게 추출된 커피가 있다. 약하다는 말 하나에 섞여 있던 문제가 조금 드러난다. 비율을 바꿀지, 분쇄도와 추출 조건을 살필지 생각할 근거가 생긴다.
그럼 숫자가 맞으면 맛도 좋은 걸까. 전통적으로 널리 쓰인 추출수율 18–22%를 모든 커피의 합격선으로 삼기는 어렵다. UC Davis가 2025년 소개한 새 Brewing Control Chart는 감각 평가와 소비자 선호 데이터도 함께 담는다. 숫자로 알 수 있는 것이 늘어났지만, 잔에 담긴 커피는 결국 마셔 봐야 한다.
UC Davis · 새로운 Sensory and Consumer Brewing Control Chart · 2025.01.02
SCA · Towards a New Brewing Chart
내가 붓는 대로
물이 흐른다면
2005년, 큰 배출구와 원뿔형 드리퍼
HARIO가 2005년에 출시한 V60에는 60도 원뿔, 나선형 리브, 큰 단일 배출구가 있다. 배출구가 작은 기구와 비교하면 붓는 속도와 분쇄 상태의 변화가 흐름에 더 직접적으로 드러날 여지가 있다. 물론 구멍이 크다고 물이 마음대로 빠지는 것은 아니다. 가루층과 필터의 저항도 함께 작용한다.
추출하는 사람은 물의 양뿐 아니라 붓는 위치와 높이, 속도도 살피게 된다. 드립포트와 저울, 타이머는 그 동작을 다시 해 보기 위한 도구다. 레시피에 블룸 물량과 구간별 누적량, 다음 물을 붓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들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뿔형은 산미가 좋고 평저형은 달다고도 한다. 기억하기는 편하다. 그런데 모양이 바뀌면 무엇이 함께 바뀔까. 커피 가루층, 즉 베드의 깊이와 넓이, 물이 지나는 경로, 필터와 맞닿는 면적이 달라진다. 그 차이를 맛 하나로 곧바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손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 매번 달라질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물 250g은 같아도 손의 움직임은 같지 않다. 자유롭게 붓는 일이 가능해진 만큼, 그 동작을 반복할 방법도 필요해졌다.
물을 다섯 번 나누면
같은 추출이 될까
물을 나누는 방식이 레시피의 이름이 되다
블룸 뒤 물을 계속 붓기도 하고, 몇 번의 큰 구간으로 나누기도 한다. 조금씩 반복해 붓는 펄스 푸어도 있다. 총 물량은 같을 수 있다. 다만 추출 중의 수위와 열, 가루가 움직이는 정도는 달라진다.
2016년 World Brewers Cup 우승자 테츠 카스야의 4:6 메소드는 전체 물을 앞 40%와 뒤 60%로 나누어 설명한다. 앞부분의 배분으로 산미와 단맛의 균형을, 뒷부분의 푸어 횟수로 농도를 조정한다는 규칙이다. 널리 알려진 기본 예시는 커피 20g에 물 300g이다.
이 규칙을 알면 바꿔 볼 자리가 보인다. 다만 첫 물에서는 산만 나오고 다음 물에서는 당만 나온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물량을 나누는 순간 수위와 접촉시간, 온도와 교반도 함께 달라진다. 4:6은 그 복잡한 동작을 기억하고 조정하기 쉽게 만든 방법으로 보는 편이 맞겠다.
James Hoffmann이 2022년 공개한 Better 1 Cup V60은 커피 15g과 물 250g을 쓴다. 50g씩 다섯 번 붓고, 충분한 블룸과 가벼운 스월을 조합한다. 스월은 드리퍼를 가볍게 돌려 내용물을 움직이는 동작이다. 한 잔 분량에서도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기 위한 접근이다.
| 방식 | 출발 조건 | 살펴볼 것 |
|---|---|---|
| 4:6 기본형 | 20g / 300g · 비교적 굵은 분쇄 | 앞 40% 배분과 뒤 60%의 푸어 횟수 |
| Hoffmann 1 Cup | 15g / 250g · 50g씩 다섯 번 | 블룸, 반복되는 펄스, 가벼운 스월 |
| 블룸 + 큰 푸어 | 비율·분쇄도는 원두에 맞춤 | 조작 횟수와 수위·배수의 변화 |
겉으로 보면 둘 다 물을 나누어 붓는다. 하지만 분쇄도와 물량, 기다리는 시간이 다르다. 같은 다섯 번이라고 해서 가루가 겪은 일까지 같지는 않다. 레시피를 읽을 때는 횟수 옆에 적힌 조건도 함께 보게 된다.
HARIO · Tetsu Kasuya 인터뷰와 4:6 메소드
James Hoffmann · A Better 1 Cup V60 Technique · 2022.11.22

평균은 맞았다.
그 안도 고르게 추출됐을까
미분·채널링·바이패스가 중요한 이유
추출수율이 같으면 비슷한 커피가 나올 것 같다. 그런데 평균이라는 말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가루층의 어느 곳은 물을 많이 만났고, 어느 곳은 덜 만났을 수도 있다. 다공성 커피 베드의 수학적 모델 연구도 흐름과 국소 추출의 편차를 보여 준다.
그라인더에서 나온 가루를 보면 크기가 모두 같지는 않다. 작은 입자와 큰 입자가 섞인다. 상대적으로 작은 미분(微粉)은 입자 사이의 틈이나 필터에 모여 물길을 바꿀 수 있다. 입도는 성분이 녹아 나오는 과정에도, 물이 통과하는 과정에도 관련된다.
| 용어 | 의미 | 관찰할 점 |
|---|---|---|
| 투과성 | 베드가 물을 통과시키는 정도 | 같은 푸어에서 수위가 쌓이거나 배수가 늦어지는가 |
| 채널링 | 물이 일부 경로에 집중되는 현상 | 젖지 않은 부분이나 반복 추출의 큰 편차가 있는가 |
| 바이패스 | 물이 베드를 충분히 거치지 않고 우회하는 현상 | 가장자리 푸어와 필터 밀착 상태가 일정한가 |
가루를 고르게 펴고 블룸에서 전체를 적시려는 이유가 있다. 가벼운 스월이나 가는 바늘로 덩어리를 푸는 WDT도 분포와 젖음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더 많이 저으면 더 고르게 추출되는 걸까. 과한 교반은 미분을 이동시키고 배수를 늦출 수 있다. 부족한 것을 채우려던 동작이 다른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추출이 끝난 뒤 베드가 평평하면 잘 내린 것처럼 보인다. 관찰할 만한 모습은 맞다. 다만 그것만으로 내부까지 고르게 추출됐다고 할 수는 없다. 떫은맛 하나로 채널링을 확정할 수도 없다. 수위와 후반 배수, 다시 내렸을 때의 차이를 함께 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한 장면으로 전부를 알기는 어렵다.
물은 더 넣고 싶다.
가루는 덜 움직이고 싶다
분산 도구와 밸브, 다단 온도가 추가한 선택지
물을 빠르게 부으면 더 많이 들어간다. 수위도 올라가고 가루도 더 움직일 수 있다. 배수 조건도 달라진다. 손은 한 가지 동작을 했는데, 바뀐 것은 여러 가지다. 최근의 도구들은 이 가운데 일부를 따로 조절하려 한다.
Melodrip 같은 분산 도구는 큰 물줄기를 작은 방울로 나누어 전달한다. 물을 공급하면서 베드에 가하는 직접적인 충격은 줄이려는 것이다. 반대로 물줄기로 적극적으로 섞는 접근도 있다. 2025년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붓는 높이와 물줄기의 연속성이 입자층의 재배열과 혼합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낮게 붓는 것이 언제나 낫다고 정리할 수는 없다.
물을 잠시 머물게 하고 싶을 때는 밸브가 쓰인다. 퍼콜레이션은 물이 커피층을 통과하며 배출되는 방식, 침지(浸漬)는 커피와 물을 함께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HARIO Switch는 배출을 열고 닫아 한 번의 추출 안에서 두 방식을 결합할 수 있다. UFO를 Switch 베이스에 얹는 구성에서도 밸브 역할은 그 베이스가 맡는다.
| 조작 | 직접 다루는 조건 | 함께 변할 수 있는 것 |
|---|---|---|
| 분산 도구 | 물줄기가 베드에 주는 충격 | 입자 이동·배수·추출 정도 |
| 밸브 열기·닫기 | 배출 시점과 물의 체류 | 수위·온도·슬러리 농도 |
| 단계별 물 온도 | 새로 넣는 물의 온도 | 베드 온도·용출 속도·최종 농도 |
그럼 이제 각각을 완전히 따로 조절할 수 있을까. 밸브를 닫아도 접촉시간만 바뀌지는 않는다. 수위와 농도 변화가 따라온다. 그럼에도 물이 빠지는 시점을 직접 정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변수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손을 댈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Penn Today · 푸어 높이와 물줄기, 커피 베드의 유체역학 · 2025.04.10
WCC · Switch 베이스로 흐름을 제어하는 2026년 경기 설명
OREA · Melodrip을 사용하는 V4 공식 레시피
온도를 낮추면
더 달아지는 걸까
온도의 효과와 물의 조성을 읽는 방법
물 온도를 낮췄더니 커피가 더 달게 느껴졌다고 해 보자. 그럼 낮은 온도가 단맛을 만든 걸까. 온도는 추출 속도에 영향을 준다. 그 때문에 최종 농도와 추출 정도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2020년 Batali 등의 드립 커피 연구에서는 최종 농도와 추출수율을 같게 맞춘 87°C·90°C·93°C 조건 사이에서 감각 차이가 제한적이었다. 온도가 달라도 결과를 비슷하게 맞추었을 때의 비교다.
이걸 보고 온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해당 범위와 통제 조건에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70°C 블룸이나 후반 저온 푸어까지 같은 결론을 적용할 수는 없다. 연구가 답한 범위만큼 읽어야 한다.
물에 적힌 ppm도 비슷하다. 같은 TDS라고 같은 물은 아니다. 경도는 주로 칼슘·마그네슘과 관련되고, 알칼리도는 산을 완충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커피의 산미에 물이 어떻게 관여하는지 보려면 이 둘을 나누어 살펴야 한다.
분쇄도를 마이크로미터로 적어 놓아도 다른 그라인더에 곧바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표값을 썼는지, 입도분포는 어떤지에 따라 흐름이 달라진다. 숫자가 자세해지면 안심하기 쉽다. 그래도 실제로 어떻게 빠지고 어떤 맛이 나는지는 다시 확인해야 한다.
Batali 외 · 농도와 추출수율을 통제한 온도 비교 연구 · 2020
SCA · 위 온도 연구의 결과 해설
SCA · 물의 알칼리도와 커피 산미
우승자의 레시피도
서로 다른 곳을 향한다
빠른 배수, 낮은 교반, 온도 전환, 하이브리드 추출
최신 레시피를 모으면 좋은 추출의 정답이 보일까. 최근 World Brewers Cup 사례에는 서로 다른 온도와 도구, 푸어 방식이 등장한다. 각자 쓰는 커피와 물, 그라인더가 다르다. 만들고 싶은 맛도 다르다. 숫자를 그대로 가져온다고 같은 잔이 나오기는 어렵다.
2022년 Shih Yuan Hsu — 입도와 물 조건의 조합. 결승 발표에서는 서로 다른 두 입도를 섞고, 첫 푸어에는 70°C·75ppm, 이후에는 95°C·90ppm의 물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커피 14g에 물 200g, 30초마다 50g씩 네 번 붓는다. 첫 물을 낮은 온도로 시작한다. 다단 온도라고 해서 반드시 뜨거운 물에서 차가운 물로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2024년 Martin Wölfl — 빠른 배수와 낮은 교반. OREA 공식 안내는 V4 Narrow의 Fast 바닥, SIBARIST Fast Flat 필터, Melodrip을 조합한다. 커피 17g, 물 270mL, 93°C이며 누적량은 60 → 120 → 170 → 270g이다. 물은 빠르게 통과시키면서 직접적인 물줄기 충격은 낮추려는 조합으로 읽을 수 있다.
시간은 출처별로 다르다. 이 글에서는 OREA 공식 게시본의 푸어 시작 0:00·0:30·1:20·2:00과 마무리 안내 2:30–3:00을 기준으로 삼았다. 대회에서 실제로 내린 기록과 이후 공개한 재현용 레시피를 하나로 섞으면 비교가 어려워진다.
2025년 George Jinyang Peng — 온도와 교반의 단계 전환. Slow Pour Supply가 소개한 레시피는 커피 15g과 물 210g을 쓴다. 초반 120g은 96°C, 마지막 90g은 80°C다. 마지막에는 Melodrip도 사용한다. 온도와 교반이 함께 바뀌었다. 여기서 나온 맛을 저온 하나의 효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2026년 Nas Jaafar — 배출과 침지의 전환. WCC가 공식 확인한 2026년 우승자는 결승 발표에서 UFO V3와 HARIO Switch 베이스를 결합한다고 설명한다. 커피 15g과 물 200g을 쓴다. 초반 100g은 밸브를 열고 통과시킨다. 58초에 닫고 1분에 나머지 100g을 넣어 침지한 뒤, 2분에 다시 열어 2분 10초에 마친다. 물이 흐르는 시간과 머무는 시간을 밸브로 나눈 것이다.
이들을 함께 놓고 보면 몇 번 붓느냐는 질문 옆에 다른 질문들이 붙는다. 얼마나 움직이게 할까. 언제 머물게 할까. 어느 시점에 다시 흘려보낼까. 레시피에 적을 수 있는 것은 늘어났다. 그렇다고 이전 방식이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다.
대회 레시피를 읽을 때는 그 도구로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 먼저 보고 싶다. 물줄기의 충격인지, 배수인지, 온도인지. 목적을 알고 나면 지금 쓰는 장비에서도 바꿔 볼 자리가 보인다.
WCC · Shih Yuan Hsu의 2022년 결승 원본 영상
OREA · The Champ 공식 레시피
Slow Pour Supply · George Peng의 2025년 레시피
WCC · 2026년 우승자 공식 발표 · 2026.06.28
WCC · Nas Jaafar의 2026년 결승 원본 영상 · 2026.06.27

그럼 다음 한 잔에서는
무엇을 바꿔 볼까
새 장비보다 먼저, 바꾼 것과 달라진 것을 기록하기
여러 방법을 알고 나면 이것도 바꾸고 저것도 바꿔 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한꺼번에 바꾸고 나서 맛이 좋아졌다면, 무엇 때문에 좋아졌는지 알 수 있을까. 다시 내려 보려면 기준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
한 잔 분량의 V60이라면 Hoffmann의 15g·250g 레시피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밝은 로스트에서는 끓인 직후의 물을 출발점으로 두고, 약 3분이라는 시간은 배수와 맛을 살피는 참고값으로 쓴다.
| 시각 | 추가 물량 | 누적 물량 |
|---|---|---|
| 0:00–0:10 | 50g · 블룸 후 가볍게 스월 | 50g |
| 0:45–1:00 | 50g | 100g |
| 1:10–1:20 | 50g | 150g |
| 1:30–1:40 | 50g | 200g |
| 1:50–2:00 | 50g · 이후 가볍게 스월 | 250g |
마지막 푸어 뒤에는 가볍게 스월하고 물이 빠지는 모습을 본다. 3분을 넘었다고 바로 더 굵게 갈 필요는 없다. 붓는 동작이 늦었는지, 후반에 배수가 막혔는지부터 살핀다. 같은 시간 안에 끝났어도 그 시간을 만든 이유는 다를 수 있다.
그다음에는 같은 원두와 물을 두고 한 가지 조작을 바꾼다. 농도를 조정하려면 비율을, 같은 비율에서 추출 상태를 보려면 분쇄도를 바꿔 볼 수 있다. 이후 온도와 푸어 횟수, 높이와 교반을 차례로 살핀다. 한 가지 조작으로 여러 조건이 함께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적어 둔다.
| 기록 | 남길 내용 |
|---|---|
| 커피와 기구 | 원두·로스팅 날짜, 드리퍼·필터, 그라인더 설정 |
| 물과 투입량 | 물의 제품·조성, 온도, 원두량·총 물량 |
| 이번에 바꾼 것 | 비율·분쇄도·푸어·교반 가운데 바꾼 조작 |
| 추출 결과 | 완성 음료량, 총 시간, 배수 모습, 가능하면 TDS |
| 맛 | 뜨거울 때와 식었을 때의 산미·단맛·질감·여운 |
굴절계가 없으면 TDS와 추출수율 칸은 비워 두어도 된다. 음료량과 시간, 식어 가면서 느낀 맛만 남겨도 다음 잔과 비교할 수 있다. 새 드리퍼를 쓰거나 물을 바꿨다면 기준도 다시 살핀다. 전에 맞았던 숫자가 이번에도 맞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더 맛있어졌다면 같은 조건으로 한 번 더 내려 본다. 한 번 잘 나온 커피와 다시 만들 수 있는 커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일상에서 쓰는 레시피라면 그 차이도 생각해 볼 만하다.
레시피를 다 적었다.
이제 커피를 마셔 본다.
종이 필터로 찌꺼기를 거르고, 숫자로 농도와 추출 정도를 구분했다. 손의 동작을 규칙으로 남겼고, 이제는 물이 흐르고 머무는 조건까지 조절한다. 오래된 방식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넘어오는 동안, 한 잔을 이해하는 방법이 조금씩 늘어났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보게 되는 것도 있다. 같은 3분이 같은 추출은 아니었고, 같은 추출수율이 같은 맛을 뜻하지도 않았다. 숫자는 분명 도움이 된다. 다만 그 숫자로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 다음 한 잔에서는 무엇을 바꿔 볼까. 물을 붓는 높이 하나일 수도 있다. 그대로 한 번 더 내려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마시고, 적어 두고, 다시 내려 본다. 그때의 맛은 또 어떨까.
2026.09.14 편집 · 출처가 있는 내용에는 원문 링크를 함께 실었습니다.
‘라라프트의 시선’과 운영 체크리스트는 편집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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